타인이 강요한 천국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지옥이 낫다.
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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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살아 움직이는 바다. 그 바다 위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사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란 얼마나 많은가.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부터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잊지 못할 사람까지 수천 명이라는 말로는 모자랄 터. 그런데 왜 나는 40여 년 전 잠깐의 인연이었던 그를 잊지 못하는가. 아마도 인훈의 말처럼 그가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늘 현장에 있으려고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동안 그를 보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얘기하고 싶다. 결국 살아 움직이는 바다 속으로 내려간 그, 이명준을.
 그와 나는 타고르 호를 같이 탔었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타고르 호를 택했다는 것이 최대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무렵의 나는 전쟁과 가난이라는 한국의 현실에 정을 붙일 수 없어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사바사바’가 통하는 세상답게 송환 절차에 끼어들어 인도행을 택했던 것이고. 하지만 그는 좀 달라보였다. 20대의 젊은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지친 표정. 마치 세상을 다 산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새로운 땅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반씩 섞인, 비슷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로 넘치는 배에서 그는 유달리 눈에 띄었고. 그렇게 호기심으로 시작된 인연은 지금까지도 그를 추억하게 한다.
 홍콩에, 마카오에 상륙하게 해달라는 다른 사람들의 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그는 일종의 별종 취급을 받았다. 애초의 약속은 인도에 닿을 때까지 배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것이었지만 어째 사람의 마음은 그리도 간사한지. 하지만 이것도 지금이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지, 그 때 당시엔 나 역시도 육지를 밟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뭐, 아주 절실한 것은 아니었기에 우리의 청을 거절한 그를 일정 정도 이해하며 바라볼 수 있었고, 덕분에 그와 친해질 수 있었긴 하다.
 그러면서 나누었던 신변잡기를 여기에 일일이 기록할 필요는 없겠지. 아참, 특이한 것 몇 가지. 보통 부모님에 대해 말하면 어머니가 먼저 나오기 마련인데 그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는 듯했다. 북에 계신다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반응이었고. 그래서인가, 보통 ‘사랑’이라 말하면 연인과의 관계를 넘어서 가족애, 조국애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의 사랑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아마 조국애 같은 것을 입에 담았다면 나는 그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으리라. 다만 그 당시에는 - 그리고 아마 지금도 - 보기 힘든 인간상이었다는 것만 얘기하고자 한다.
 별다른 사건이 없는 배 위에서의 생활, 그 무료한 시간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그와 나는 꽤나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남과 북에서 모두 살아봤던 그의 경험으로 인해 그가 ‘광장’과 ‘밀실’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천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날에는 이야기 끝에 그가 덧붙이기도 했었다.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이 아닙니까?’라고. 나 역시도 공감하며 말했다. 남한은 자유가 넘쳐서 문제가 되는 개방적 광장이며 북한은 자유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폐쇄적 밀실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조금 내저었다.
 오히려 그는 남한을 밀실이라고 표현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라고 한 그는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불란서로 유학 보내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럴 듯했다. 게다가 북한을 보며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 피묻은 셔츠와 울부짖는 외침은 없다. 그건 혁명의 광장이 아니었다.’라고 얘기하지 않았던가. 결국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겉으로 보이는 그 어떤 모습과는 다르게 읽어야 하는 남과 북의 사회였을 거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고도 말했던 그는 내게도 물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사뭇 절실해 보이는 눈이었지만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찾을 때까지 오래 고민하고 방황하는 건 우리 모두가 하고 있던 일이었으니까. 이외에 나는 무엇이라고 더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도 굳이 대답을 기대했던 질문은 아니었던 듯 깍지를 끼고 내 옆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동안 나는 그가 던진 화두를 붙잡고 씨름을 했더랬다. 다른 흥밋거리가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가 말하는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이란 어떤 것인지, 그것을 찾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나 역시도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이제와 생각해보자면 사실 그것은 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이유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것을 내 문제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지.
 떠나온 곳보다 닿을 곳이 더 가까워진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과거와 함께 다시 그 얘기를 꺼냈다. 해방 이후의 남한 사회에 실망하고 월북했지만 북한 역시도 자기가 꿈꾸던 곳은 아니었다고. ‘무디게 울리는 소리. 광장에서 동상이 넘어지는 소리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 엎드려서 울고 싶었으나, 울기 위해서는 그는 네 개의 벽이 아직도 성한 그의 방으로 가야 했다. 아니 그의 마음의 방이 아니다. 마음의 방은 벌써 무너진 지 오랬으므로. 그의 둥글게 안으로 굽힌 두 팔 넓이의 광장으로 달려가야 했다.’라며 자신의 경험을 술회하는 그는 담담했다. ‘두 팔 넓이의 광장’이 무어냐고 묻자 어느 날 맞잡은 손을 보다 생각난, 사람 하나가 들어가면 메워질 둥근 공간이라고 했었지. 자신에게 남은 우상은 ‘부드러운 가슴과 젖은 입술을 가진 인간의 마지막 우상’이라며 그는 떠나온 곳도, 닿을 곳도 아닌 먼 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한 가지 고백을 했었다. 갈매기 두 마리. 출항할 무렵부터 보이던 그 새들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와 채 태어나지도 못한 딸이라고. 뱃사람한테 얘기를 들었지만 여태 알아보지 못하고 피하려 하고 총으로 쏘려고 했다며 꼭 무엇에 홀려 있었던 기분이라고. 지금의 자신이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걸 알고 뒤돌아보니 푸른 광장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해성사를 하듯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이 취하게 될 행동을 예비했음이 틀림없다. 왜 그땐 그걸 몰랐을까. 하긴, 사실은 알았다고 해도 말릴 자신이 없었다. 남과 북 모두에서 환멸을 느낀 그에게 나는 무얼 바라고 살아보라 얘기할 수 있을지. 나는 싫기 때문에 떠난 것이지만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떠난 것 아닌가. 이제 보면 포로 송환 때 중립국을 선택하고 바깥에서 큰 소리로 웃었던 것은 그였으리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 하지만 그 곳에 이르기 전에 그는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본 그는 천상 ‘궁리질 공부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을 찾아 떠났고, 현실과 부딪친 이상들은 산산이 깨어졌다. 그는 사랑에서 이를 위로받으려 했지만 그 역시도 쉽지 않았다. 20년 쯤 전엔 한 시인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얘기했었지. 그리고 시인은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며 시를 끝맺었더랬다. 더 이상 부드러운 가슴도 젖은 입술도 남지 않은 그는 빈집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결국 그는 기대 쉴 수 있는 곳이 없어졌기 때문에 영원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간 것일 게다.
 ‘미친 믿음이 무섭다면, 숫제 믿음조차 없는 것은 허망하다.’고 말하던 그를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의 말을 곱씹어 본다. 미친 맹신과 허망한 무신이라. 마치 지금 이 곳을 본 것처럼 얘기하지 않았나. 하긴 밝은 눈을 가지고 늘 고민하고 움직이려 노력했던 그에게는 훤히 들여다보였을 테지. 한 치 앞도 파악하기 힘든 지금, 그래서 그가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광장>을 다시 꺼내 읽었다. 회색인이니 패배주의니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 이명준이 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것일까. 한동안 - 어쩌면 지금까지도 - 그에게 빠져 있던 나는 여기에 객관적인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마 ‘그럴싸한 맺음말’ 같은 건 찾지 못한 채 ‘맺음? 맺음말이란 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누리와 삶에 대한 맺음말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만 잡히면 삶 같은 건 아주 시시해지는 그런 무엇일까. 아니 반드시 그럴 것까지는 없고, 또 그러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떻게 살아야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라며 고민하는 모습에, 그리고 그 고민의 답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 결론이 어떻게 내려졌든 - 에 자신을 비춰보고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뿐. 아마 두 명의 독고준을 만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조금 더 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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